2016. 12. 9. 10:57 문학

여백

아주 오래 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을 때 
조금 늦가을 쌀쌀한 아침에 충북대 뒷길 쯤의 길을 가다가 
한 무더기 코스모스를 보고 시를 쓴 적이 있다.
당시의 나로서는 좋아하지 않던 '연애시' 를.

그 시를 당시 전동 타자기로 타이핑을 해놓았었는데 
짐을 정리하다가 발견했다.

당시의 감정, 흘러간 시간, 현재의 나, 많은 생각이 든다.

 

 

여백

 

연분홍 코스모스 바람에 날리는
혼자 걷는 이술내려 추운 거리에
밤이 남긴 고독의 전설 부스러기.
수채화처럼 투명한 아침 풍경.
꽃잎이 전하는 지나간 계절.

 

연분홍 코스모스 바람에 날리는
혼자 걷는 이슬내려 추운 거리에
너무 푸르게 맑은 하늘.
젊은 연인이 서로의 운명을 알지 못하고 짓는 웃음.
빛바랜 영화 광고 속
어린 여배우의 미소.

 

연분홍 코스모스 바람에 날리는
혼자걷는 이슬내려 추운 거리에
허스키한 잊혀진 여가수의 슬픈 노래.
산다는 건
일기장의 여백을 채우는
광대의 어설픈 몸짓.
나는
나의 아직은 많은 일기장의 여백을
너의 이름 세 글자로
너의 맑은 얼굴로 채우고 싶네.

 

연분홍 코스모스 바람에 날리는
혼자 걷는 이슬내렬 추운 거리에.

 

198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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